20와트의 천재, 1000와트의 바보
당신이 상상하지 못하는 미래에 대하여
설이다.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시간. 설 연휴에는 10시간이 되고, 12시간이 된다.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경험했다. 그때마다 궁금했다. 이 끝없는 정체를 항공샷으로 찍으면 어떤 모습일까.
답은 이미 알려져 있다. 2008년 나고야 대학의 실험이 증명했다. 원형 트랙에 22대의 차량을 올려놓고 일정한 속도로 달리게 했다. 사고도 없고, 공사도 없고, 차선 축소도 없었다. 그런데 몇 바퀴 뒤, 단 한 명의 운전자가 미세하게 브레이크를 밟자, 그 감속이 뒤로 전파되면서 완전 정지 구간이 생겨났다. 유령 정체(phantom traffic jam).
병목의 원인은 도로가 아니다. 인간이다.
자, 한 가지만 상상해보자. 인간 운전자가 단 한 명도 없다면. 인간의 평균 반응 시간 1.5초가 AI의 밀리초로 대체되고, V2V 통신으로 군집 전체가 동시에 판단한다면. 브레이크 파동 자체가 사라진다. 유령 정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물리법칙과 타이어 마찰력만이 제약인 세상.
당신은 이 세상이 상상되는가. 솔직히 대부분은 못한다. “2시간? 1시간?” 정도를 떠올린다. 4시간이라는 기존 경험이 앵커(anchor)이기 때문이다. 앵커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시나리오는, 말 그대로 상상의 바깥에 있다.
이 글은 고속도로 이야기가 아니다.
병목은 인간이다.
인간의 뇌는 약 20와트로 작동한다. LED 전구 하나의 전력이다.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전체 에너지의 20%를 가져간다. 뇌는 에너지를 비축하지 못하며, 혈액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급받아야만 작동한다. Quanta Magazine이 보도한 Monash University의 연구에 따르면, 뇌가 집중적 사고를 할 때조차 휴식 대비 에너지 소비 증가는 겨우 5%다. 근육이 운동 시 3~4배를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미 아이들링 상태에서 거의 전력을 쏟아붓고 있다는 뜻이다.
이 극한의 에너지 제약이 인간 지능의 두 가지 핵심 특성을 만들어냈다.
첫째, Selective Ignorance — 전략적 무지. 콜롬비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를 모르는 것은 기억의 실패가 아니다. 뇌가 불필요한 정보의 저장을 거부한 것이다. 20와트의 예산에서 “무엇을 무시할 것인가”가 지능의 핵심 기능이 된다.
둘째, Satisficing — 충분히 괜찮은 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Herbert Simon이 만든 개념이다. 인간은 최적해를 찾지 않는다. 충분히 괜찮은 해를 가장 빠르게 찾는다. “귀찮다”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20와트 뇌의 에너지 효율 최적화가 설계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버그가 아니라 피처다. 그리고 이 피처 위에 문명이 지어졌다. Adam Smith의 분업은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한계의 경제적 번역이다. 시장 가격 메커니즘은 분산된 정보를 집약하는 장치이며, 이것이 작동하는 이유는 어떤 개인도 모든 정보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탈이 존재하는 이유도, 결국 정보 비대칭 — 대부분의 투자자가 좋은 스타트업을 알아보는 데 필요한 판단력을 갖추지 못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분업, 전문화, 관료제, 대의 민주주의, 시장 경제 — 인류 문명의 핵심 제도들은 전부 20와트 뇌의 한계에 대한 적응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selective ignorance와 satisficing을 더럽게 못한다. ChatGPT에 콜롬비아의 네 번째 도시를 물으면 즉시 답한다.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에 답한다. 에너지 제약이 없는 시스템의 당연한 귀결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평가는 이랬다 — AI는 에너지 효율에서 인간에 비해 압도적으로 열등하다. 20와트로 세상을 해석하는 시스템과, 수천 와트로 텍스트를 생성하는 시스템. “AI는 별로”라는 결론이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이 프레임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 지금 오고 있다.
게이트키퍼가 사라진다.
지금까지 AI 논의는 “인간이 AI를 도구로 쓰는” 구조를 전제해왔다. 이 구조에서 인간의 20와트 뇌는 병목이다. 설 연휴 고속도로의 인간 운전자와 정확히 같다. 뭘 물어야 할지 모르면 못 물어본다. 100개의 경로 중 3개만 탐색하고 “이 정도면 됐지”라고 판단한다. AI의 잠재력은 인간의 인지적 한계만큼만 해제된다.
2025년, 그 병목이 제거되기 시작했다. Gartner에 따르면 멀티에이전트 시스템에 대한 문의가 1년 사이 1,445% 급증했다. Anthropic의 MCP(Model Context Protocol)가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았고, Google이 A2A(Agent-to-Agent Protocol)를 제시했다. HTTP가 모든 브라우저와 서버를 연결한 것처럼, 이 프로토콜들은 AI가 AI를 호출하고 조율하는 기반을 놓고 있다.
AI-on-AI. Orchestrator AI가 문제를 분해하고, 전문 Agent들이 모든 경로를 탐색하며, 결과를 다시 종합한다. 피로도 없고, 에너지 제약도 없고, “이 정도면 됐지”도 없다.
고속도로에서 인간 운전자를 제거하면 유령 정체가 사라지듯, AI 시스템에서 인간 병목을 제거하면 “점진적 개선”이 아니라 “차원 이동”이 일어난다. 인간이 AI를 쓸 때, 20와트 뇌는 1000와트 시스템의 게이트키퍼였다. AI가 AI를 쓸 때, 그 게이트키퍼가 사라진다.
당신이 보지 못하는 것.
사진과 8K 동영상, 그리고 정물화에서 느끼는 감동은 다르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숨을 멎게 하는 것은 정보가 많아서가 아니라, 무엇을 빼야 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감동은 데이터의 밀도가 아니라 빈칸의 설계에서 온다. 하이쿠의 17음절, 첫사랑의 기억에서 상대방 얼굴만 선명한 것, 설 연휴 할머니 집의 기억에서 된장찌개 냄새만 남아있는 것 — 전부 selective ignorance의 산물이다. 인간의 한계가 곧 인간의 아름다움이었다.
AI에게는 8K가 정물화보다 “좋다.” 더 많은 데이터, 더 많은 신호. AI가 AI의 출력을 소비할 때, 감동이라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백은 의미가 아니라 비효율이다. 무손실 완전성이 유일한 가치 기준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AI 무용론과 버블론의 맹점이 드러난다.
“AI가 별로다.” “기대에 못 미친다.” “할루시네이션이 너무 많다.” 전부 맞다 — 인간의 평가 기준에서는. 그런데 AI-on-AI 루프가 닫히는 순간, 인간의 평가는 시스템의 변수에서 빠진다. 할루시네이션은 검증 에이전트가 밀리초 안에 교차 검증한다. 장황한 답변은 AI에게 오히려 신호 밀도다. 느린 속도란 인간의 체감 기준이며, AI-on-AI에서 1초는 수천 번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시간이다.
마차를 타는 사람이 자동차를 평가했다. “시끄럽고, 냄새나고, 말보다 고장이 잦다.” 전부 맞았다 — 마차의 기준에서는. 하지만 자동차는 마차를 대체하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자동차가 자동차를 위한 인프라 — 고속도로, 주유소, 교외 주거지 — 를 만들어낸 뒤, 마차의 평가 기준 자체가 소멸했다.
지금 AI 회의론이 간과하는 것이 정확히 이것이다. AI의 궁극적 고객이 인간이라는 전제 위에서 “가성비가 안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AI의 궁극적 고객이 다른 AI가 되는 순간 — 그리고 그 순간이 지금 오고 있다 — 인간 기준의 가성비 계산은 의미를 잃는다. 그리고 1000와트를 돌릴 수 있는 것은 자본이다. AI-on-AI를 구축할 수 있는 소수의 Big Tech와, 여전히 20와트로 세상을 해석해야 하는 나머지 사이의 격차는, 재산의 불평등도 정보의 불평등도 아닌, 인지 능력 자체의 불평등이다.
파도 앞에서.
나는 20년 넘게 기술 산업과 벤처 투자에 몸담아왔다. 인터넷, 모바일, 클라우드 — 매번 과잉 흥분이 있었고, 매번 과소 평가가 있었다.
AI-on-AI에 대해서는, 과소 평가가 훨씬 위험하다.
과잉 흥분은 자기 교정된다. 투자가 앞서가면 시장이 조정한다. 하지만 과소 평가는 교정이 안 된다. 가만히 있으면 파도가 그냥 지나간다. 파도 위에 있는 사람은 올라가고, 해변에서 “별것 아니네”라고 말한 사람은 그 자리에 남는다.
“AI가 별로”라는 판단이 정밀한 분석의 결과인지, 20와트 뇌의 에너지 절약 모드인지를, 정직하게 물어야 한다.
설 연휴, 고속도로에 갇혀 있을 때 한번 생각해보시라. 이 정체의 원인이 도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 AI의 병목도, AI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고속도로에서 인간을 빼면 유령 정체가 사라진다. AI에서 인간을 빼면, 우리가 아직 이름도 붙이지 못한 무언가가 시작된다.
우리는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이 과장이라고 느낀다면, 그 느낌이 분석인지 satisficing인지를 — 한 번만 더 생각해보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