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도착하면 죽는 것들
Mythos is coming
지금 테크 쪽 컨텐츠를 쓰는 사람들은 온통 Mythos 성능 미쳤다 라는 소리만 질러대고 있다. 이해한다. 그래야 FOMO가 생기니까. 화이팅!
나는 좀 더 안쪽으로 파고들어 보려 한다. 성능이 아닌 시사점들 위주로.
지난번 글이 매콤했다면 오늘 글은 좀 쓰다.
옆에 박하사탕 하나 정도 준비해둬도 좋을 듯 하다.
Anthropic이 새로운 모델 Mythos를 발표하려다가 멈췄다. 뚜껑을 열어보니 너무 강력해서 지금까지 사람들이 사용하던 프로토콜들을 전부 무력화 가능하다는 무서운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Anthropic은 Mythos를 Preview 버젼으로 제한했다. Anthropic은 현재로서 이 모델을 일반에 풀 생각이 없다. 발표문에 “일반 공개 계획 없음”이라고 못박혀 있다. 대신 Project Glasswing이라는 이니셔티브를 만들어 12개 조직에만 접근권을 줬다.
12명의 명단은 이렇다. AWS, Google, Microsoft, Apple, NVIDIA, Broadcom, Cisco, CrowdStrike, Palo Alto Networks, Linux Foundation, JPMorganChase, 그리고 Anthropic 본인.
빠진 이름이 더 많은 시사점을 준다.
OpenAI가 없고, Meta가 없고, Oracle도 없다. 중국, 유럽, 한국, 일본, 인도 기업도 한 곳도 없다. 그리고 미국 정부도 없다. 미국 정부는 “ongoing discussions” 자리에 있을 뿐, 12명의 자리에는 앉지 못했다.
이 명단의 진짜 의미
Anthropic은 이 명단을 보안 이니셔티브의 파트너 명단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 명단은 의도하지 않은 다른 문서이기도 하다. AI가 가장 늦게 대체할 자들의 명단.
생각해보면 단순하다. Anthropic은 AI 회사다. 모든 것을 AI로 대체하는 게 그들의 사업이다. 그런 그들이 1억 달러 사용 크레딧을 걸고 12명에게 “이건 너희가 해줘야 한다”고 부탁했다. 자기 모델로 대체할 수 있었다면 직접 했을 것이다. AI 회사가 자기 부정을 한 명단이고, 그래서 이 명단은 AI 시대 생존 영역의 가장 정직한 지도다. 본인들이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명단은 매우 한정적이다.
12개라는 숫자가 작다는 게 아니라 12개의 버티컬이 한정적이라는 뜻이다. 인터넷 토대, 칩, 네트워크 장비, 보안, 결제, 운영체제 거버넌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미 수십 년 전에 자리를 잡은 시스템 인프라다. Cisco는 1984년 창업이다. Microsoft는 1975년이다. Linux 커널은 1991년에 시작됐다. JPMorgan의 뿌리는 179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규 진입이 사실상 닫힌 자리들이다.
지난 몇 년간 AI 시대 생존론은 대체로 이런 모양이었다.
AI에 대체되지 않으려면 깊은 해자를 만들어라. 워크플로우 안에 박혀라. 데이터를 쌓아라. 듣기에 좋다. 그러나 Anthropic의 12명 명단은 이 처방의 한계를 같이 보여준다. 해자는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다. 1985년에 Cisco를 창업한 사람과 2025년에 SaaS를 창업한 사람은 같은 선상에 있지 않다.
단위가 바뀌었다
이 패턴 자체는 새롭지 않다. 지난 200년간 빈 회의부터 얄타까지, 강대국이 세계 질서를 다시 그릴 때마다 같은 일이 반복됐다. 매번 10명에서 15명 사이의 명단이 발표됐고, 그 명단에 들어간 자는 다음 30년의 규칙을 만들었다. 들어가지 못한 자는 그 규칙을 받았다. 그 회의들에 조선은 어디에도 못 들어갔고, 그게 1910년의 결과로 이어졌다. 한국인이 모를 수 없는 패턴이다.
새로운 건 단위다. 19세기 회담의 자리에는 국가가 앉았다. 빈에 영국 외무장관이 갔고, 베를린에 비스마르크가 의장을 맡았고, 베르사유에 미국 대통령이 직접 갔다. 그래서 못 들어간 나라가 할 일도 명확했다. 국가를 강하게 만드는 것. 산업을 일으키고 군대를 키우고 외교를 하는 것. 모든 정답이 국가 단위에 있었다.
Project Glasswing의 12명에는 미국 정부가 없다. 자리에 앉은 건 12개 기업이다. 세계 최강대국의 정부조차 이 회담에서는 옵저버다. Anthropic이 누구를 명단에 넣을지 정한다. 미국 의회가 아니다. 백악관이 아니다. 한 AI 회사의 경영진이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라 다음 30년의 사이버 인프라 표준이 정해진다.
다음 시대의 회담은 단위가 국가에서 기업으로 바뀌었다. 명단에 들어가려면 정부가 강한 게 아니라 기업이 강해야 한다. 그것도 그냥 규모만 큰 기업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완전히 대체 불가능한 기업이어야 한다.
한국 정부가 잘못한 게 아니다
먼저 분명히 해두자. 한국이 지난 60년간 정부 주도 산업 정책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중화학공업, 초고속 인터넷, 그리고 지금의 K-반도체와 K-AI까지. 명단의 단위가 국가였던 시대에 정부가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은 합리적이었고, 한국은 그 합리성으로 기적을 만들었다. 다른 어떤 후발 국가도 같은 시기에 같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이건 이론이 아니라 결과다.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게임이 바뀐 것이다.
1970년대 중공업 정책의 도구가 1990년대 IT에 그대로 안 맞았던 것과 비슷하다. 그때도 정부는 빠르게 도구를 바꿨다. 지금 또 그래야 할 시점이다.
한국의 명단을 채우려 하면
Glasswing 12명의 카테고리에 한국 등가물을 넣어보면 10명까지 채워지고 두 자리가 빈 채로 남는다. 클라우드의 네이버, 메모리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통신의 KT, 플랫폼의 카카오, 금융의 국민은행, 전력의 한국전력, 보안의 안랩, 결제의 금융결제원, 자본시장의 한국거래소. 여기까지가 10명이다. 빈 두 자리는 네트워크와 반도체 인프라, 그리고 오픈소스 거버넌스다. 한국에는 Cisco도 Broadcom도 Linux Foundation도 없다.
이 명단이 보여주는 것은 세가지다.
첫째, 두 자리가 비어 있다. 한국 IT 인프라의 두 층이 외국 장비와 외국 거버넌스 위에서 돈다.
둘째, 채워진 10명 중 세 곳이 정부 또는 정부 산하다. 한국전력, 금융결제원, 한국거래소. 미국 명단에는 정부 기관이 단 한 곳도 없다. 한국의 시스템층이 역사적 이유로 민간보다 정부와 정부 산하를 통해 운영돼왔다는 사실의 반영이다.
셋째, 채워진 10명조차 한 단계 들여다보면 미국 12명의 하위 노드에 가깝다. 네이버 클라우드는 Linux 위에서 돌고, 삼성전자의 반도체 설계는 미국 EDA 툴 위에서 돈다. 한전 OT 시스템에는 Cisco 장비가 들어가고, 국민은행 엔드포인트는 CrowdStrike 류의 미국 솔루션에 의존한다. 한국 안에서는 가장 안쪽 자리지만 글로벌 시스템층에서는 가장자리에 서 있다.
그래서 다 국산화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자연스러운 결론이 떠오른다. 한국 인프라를 다 국산화하자. 자체 클라우드, 자체 칩, 자체 네트워크, 자체 OS.
그러나 이 결론은 틀렸다.
시스템층은 글로벌 단일 표준이 효율의 핵심이고, 한국이 그 표준의 하위 노드인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일본도 독일도 영국도 같은 자리에 있다. 그게 21세기 IT의 기본 구조다.
진짜 문제는 표준 그 자체가 아니다. 다른 두 가지다.
하나는 표준 위에 얹혀 있는 한국 고유의 로컬 레이어다. 한국어 인증, 한국 규제 대응, 한국 의료 데이터, 한국 행정 시스템. 이 층은 글로벌 시스템 12명의 시야 바깥에 있다. 그들이 만들지도 보호하지도 않는다. 노관심의 영역이다. 그런데 이 층이 무너지면 한국 시스템이 무너진다. 시장이 작아 글로벌 자본은 들어오지 않고, 안보 차원에서 외국 자본이 들어오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자국 자본만이 채울 수 있는 빈 시장이 정확히 여기 있다.
다른 하나는 한국 기업 한두 곳이 글로벌 시스템층 명단에 직접 박히는 일이다. 모든 카테고리를 다 채우려는 게 아니다. 메모리에서 삼성전자가 이미 한 자리를 가졌듯이, 다른 한두 카테고리에서 한국 기업 하나가 글로벌 12명 안에 들어가는 길. 이건 국산화의 정반대로 글로벌화다. 한국 안에서 보호받으며 자라는 게 아니라 한국 밖으로 나가서 글로벌 표준의 일부가 되는 것.
이 두 갈래가 다음 시대의 명단을 마주하는 진짜 답이다. 안에서 지키는 자본과 밖에서 자리를 만드는 자본. 둘 다 자국 자본의 일이고, 둘 다 정부가 그림을 직접 그리는 일이 아니라 가장 긴 호흡으로 서 있는 LP의 일이다. 새 게임에서 정부의 역할은 그림 그리는 자에서 가장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LP로 옮겨가는 것이다. 미국 시스템층 12명 중 상당수가 초기에 국방부, NSF, DARPA의 자금을 거쳤다. 다만 그 자금이 기업의 자리를 대신 만들지는 않았다. 기업이 자기 자리를 만들고 자금이 그 뒤에 서서 버텨줬다.
클로징
베를린, 얄타, 포츠담에 못 들어간 나라의 후예가, 다음 회담의 단위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가장 빨리 알아채야 한다. 회담이 기업 단위로 바뀌었다면 한국이 보낼 자리도 기업이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그 기업 뒤에 30년간 서 있는 일이다.
한국 정부가 후발주자 시대에 보여준 놀라운 적응력이 한 번 더 필요한 자리에 와 있다.





항상 좋은 인사이트와 어려운주제도 알아듣기 쉽게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