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전기가 아니라 한국 부동산이 될 수 있다
Sonnet 5가 지연된 진짜 의미
간밤에 Anthropic이 Opus 4.6을 출시했다. 성능은 무척 좋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
업계가 기다린 건 이게 아니었다. 모두가 기다린 건 Sonnet 5 — 더 싼 토큰으로 최상위 성능을 내겠다던 그 모델이었다.
Sonnet 5에 대한 기대는 단순한 제품 기대가 아니었다. 그건 AI 산업 전체의 약속에 대한 기대였다. “AI는 점점 더 똑똑해지면서 동시에 싸질 것이다.” 모든 AI 회사의 IR 자료, 모든 빅테크의 컨퍼런스 콜에 들어있는 전제. 그런데 그 약속의 증거가 될 제품이 안 나오고, 대신 비싼 모델의 업그레이드가 나왔다.
이건 Anthropic 하나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OpenAI의 GPT-5도 계속 지연됐다. Google Gemini Ultra도 기대에 못 미쳤다. 저가 모델(GPT-4o mini, Gemini Flash, Llama)은 빠르게 좋아지고 있지만, 최상위 성능 구간에서의 비용 하락은 모든 회사가 고전하고 있다.
여기서 불편한 질문이 나온다. AI는 정말 “전기”가 될 것인가?
“AI는 전기가 될 것이다” — 이 비유의 함정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비유가 있다. “AI는 전기와 같다. 처음엔 비쌌지만 결국 모든 곳에 깔리는 유틸리티가 될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보자. 1882년 에디슨의 Pearl Street 발전소가 뉴욕 맨해튼 남단에서 85명의 고객에게 400개의 전구를 밝혔다. 전기는 사치재였다. 부유층만 쓸 수 있었고, 19세기 대부분 동안 전기 시가 라이터나 전기 침대 온열기 같은 제품은 부자들의 장난감이었다.
그런데 전기는 정말로 민주화됐다. 핵심 인물은 새뮤얼 인설(Samuel Insull)이었다. 에디슨의 비서로 시작한 인설은 소규모 전력회사들을 통합하고 규모의 경제를 만들었다. 전기 가격은 런던에서 10년 만에 3분의 1로 떨어졌다. 1920년대에 미국 도시 가구의 절반 이상이 전기를 사용하게 됐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대부분이 빠뜨리는 부분이 있다. 전기의 민주화에는 50년이 걸렸고, 그것도 정부의 강력한 개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35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농촌전력청(REA)을 만들어 1억 달러(현재 가치 약 20억 달러)를 투입했다. 민간 전력회사들이 “수익이 안 된다”며 거부한 농촌 전력화를 정부가 직접 밀어붙인 것이다. 당시 미국 농가의 10% 미만만이 전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완전한 농촌 전력화는 1930년대 이후에야 이뤄졌다.
그리고 전기가 민주화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가 있다. 규제가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주(州) 단위 공익사업위원회가 전력회사에 독점 프랜차이즈를 주는 대신 요금 상한을 설정했다. 1907년 위스콘신과 뉴욕을 시작으로, 1914년까지 43개 주가 이 모델을 채택했다. 공급자 독점이 있었지만, 그 독점을 공공의 이익으로 전환하는 규제 프레임워크가 있었다.
AI에는 이런 프레임워크가 없다.
한국 부동산이라는 더 정확한 비유
나는 AI의 미래가 전기보다 한국 부동산에 더 가깝다고 본다. 무슨 뜻인가.
2025년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4.5억 원을 돌파했다. 사상 최초로 100만 달러를 넘겼다. 4월에 13억을 넘긴 지 불과 3개월 만이다. 한강 이남 11개 구는 평균 17.6억 원, 이북 14개 구는 10억 원이다. 전국 아파트 가격 5분위 비율(상위 20% 대 하위 20% 가격 비교)은 12.0으로 2008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고, 서울만 따지면 6.5로 역대 최고다.
2025년 3월 기준, 상위 20% 가구의 순자산은 하위 20%의 45배다. 전년의 42배에서 더 벌어졌다. 순자산 지니계수는 0.625로 2012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다. 가구 자산의 75.8%가 부동산이다.
한국 부동산의 핵심 문제는 가격이 높다는 게 아니다. 가격이 안 떨어지는 구조라는 거다. 서울 아파트는 2025년 한 해에만 8.7% 올랐다. 약 20년 만의 최고 상승률이다. 공급은 규제로 제한되고, 수요는 서울에 집중되고, 규제는 오히려 가격을 올리는 방향으로 작동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5년간 20번이 넘는 부동산 정책을 쏟아냈지만, 서울 아파트 가격은 거의 두 배가 됐다.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자본력 있는 사람만 매수할 수 있게 되고, 나머지는 시장에서 퇴출됐다.
AI 산업의 구조가 이것과 놀랍도록 닮았다.
공급 과점: NVIDIA가 AI 가속기 시장의 86-92%를 장악하고 있다. 2025 회계연도 데이터센터 매출만 $1,152억으로 전년 대비 142% 성장. 가장 최근 분기(FY2026 Q3)에는 데이터센터 매출이 $512억을 기록하며 전체 데이터센터 장비 시장의 50%를 넘어섰다. CUDA라는 소프트웨어 생태계에 400만 명의 개발자와 4만 개 기업이 묶여 있다. 2023-2024년 GPU 부족 때 AMD GPU가 물리적으로 있어도 소프트웨어 호환 문제로 못 쓰는 상황이 발생했다.
수요 집중: 최상위 AI 모델을 훈련하고 운영할 수 있는 곳은 빅테크 몇 곳뿐이다. 2025년 하이퍼스케일러들의 AI 인프라 투자는 $4,050억으로 전년 대비 62% 증가했다. 하지만 이 투자의 상당 부분은 NVIDIA에서 더 많은 GPU를 사는 데 쓰인다. 커스텀 칩을 만들려고 해도, 그 칩에서 돌릴 모델을 훈련시키려면 NVIDIA GPU가 필요한 역설적 구조다.
규제의 부재: 전기에는 공익사업위원회가 있었다. AI에는 그런 게 없다. 가격 통제도, 보편적 접근 의무도 없다. 시장 논리만 있다.
결과는? 한국 부동산과 같은 양극화.
양극화의 구체적 모습
이미 징후가 보이고 있다.
강남 = 빅테크. 최상위 AI를 자체 보유하고 운영한다. 비용이 떨어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오히려 진입장벽이 높을수록 경쟁 해자(moat)가 깊어진다. Google, Microsoft, Meta, Amazon은 AI의 강남 주민이다.
전세 세입자 = AI 스타트업. API를 통해 빅테크의 AI를 빌려 쓴다. “AI 네이티브 기업”이라고 불리지만, 실상은 임차인이다. 모델 회사가 API 가격을 올리면 마진이 날아간다. 집주인이 전세가를 올리면 갈 곳이 없는 것처럼.
무주택자 = 전통 산업의 중소기업. AI 전환을 해야 한다는 건 아는데,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AI 민주화”를 기다리고 있지만, 한국의 무주택 청년들이 “집값이 떨어질 거야”를 기다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실제 숫자를 보자. GPT-4 훈련 비용은 약 $1.5억이었다. 하지만 2024년 말까지 누적 추론(inference) 비용은 $23억에 달했다. 훈련 비용 대비 15-20배의 운영 비용이 드는 구조다. 토큰당 비용은 떨어지고 있지만(GPT-3.5급 성능 기준 280분의 1로), 총 추론 비용은 320% 증가했다. 비용이 떨어져도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총비용은 올라가는 역설. 한국에서 금리가 떨어지면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오르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역사는 어느 쪽을 가리키는가
공정하게 보자. 반론도 있다.
전기도 처음엔 한국 부동산이었다. 1880년대의 전기는 뉴욕 맨해튼 남단의 사치재였다. 농촌은 5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AI도 같은 경로를 갈 뿐, 시간이 걸릴 뿐이라는 주장.
GPU 독점은 깨지고 있다. Google TPU, AWS Trainium, AMD MI300이 NVIDIA의 아성을 흔들고 있다. 실제로 H100 클라우드 가격이 2024년 말 시간당 $8-10에서 2025년 말 $2.99-4로 64-75% 하락했다. Midjourney는 NVIDIA에서 Google TPU로 이전해 추론 비용을 65% 줄였다. Anthropic은 TPU 경쟁을 레버리지 삼아 NVIDIA에서 30% 할인을 받아냈다. 분석가들은 NVIDIA의 추론 시장 점유율이 2028년까지 90%+에서 20-30%로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 반론들은 유효하다. 하지만 핵심을 놓치고 있다.
전기가 민주화된 건 기술이 발전해서가 아니라, 민주화하겠다는 정치적 의지와 규제 프레임워크가 있었기 때문이다. 루스벨트의 REA, 주 단위 공익사업위원회, 그리고 “전기는 사치가 아니라 필수”라는 정치적 선언. 이것들이 없었으면 전기도 지금의 한국 부동산처럼 됐을 수 있다.
AI에는 아직 그런 것이 없다. 오히려 공급 구조는 더 독점적이고, 규제 논의는 “안전”에만 집중되어 있지 “접근성”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
GPU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고? 한국 부동산도 가끔 떨어진다. 그리고 다시 오른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2022-2023년 잠시 조정을 받았다가 2025년에 8.7% 폭등한 것처럼.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가격은 결국 올라간다.
투자자로서 내가 보는 것
나는 이 분석이 AI 비관론이 아니라 AI 현실론이라고 생각한다.
AI가 “전기”가 될지 “한국 부동산”이 될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정치의 문제다. 그리고 현재의 구조는 한국 부동산에 더 가깝게 흘러가고 있다.
이게 투자에 대해 말해주는 것:
첫째, “AI가 싸질 거니까 모두에게 기회가 온다”는 내러티브에 베팅하지 마라. SoftBank와 OpenAI의 $500B Stargate 프로젝트는 이 내러티브 위에 서 있다. 그 전제가 흔들리면 ROI 타임라인이 늘어난다.
둘째, 비싼 AI를 가장 높은 ROI로 전환할 수 있는 곳에 투자하라. AI가 commodity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비싼 AI를 써도 충분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버티컬에 집중하는 게 현실적이다.
셋째, 한국은 역설적으로 기회다. 출산율은 2024년 0.75로 9년 만에 소폭 반등했고 2025년 9월에는 0.85까지 올랐지만, 여전히 세계 최저다. 한국은행은 2040년대 영구적 경기침체를 경고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 가장 빠른 고령화. 이 문제들은 “AI가 싸지면 좋겠다” 수준이 아니라 “비싸더라도 AI를 써야 한다” 수준의 절박함을 만든다. 절박함이 있는 곳에 시장이 생긴다.
Sonnet 5의 지연은 작은 뉴스다. 하지만 그 뒤에 있는 시그널은 작지 않다. AI가 전기가 될 거라는 약속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 전에, 한국 부동산의 역사를 한번 들여다보라.





비교가 너무 설득력있는
글입니다.
그럼 현실적으로 우리집 전기요금은 앞으로 어떻게될까요?
흥미로운 분석 잘 읽었습니다.
제가 지켜본 바 약 2년 부터 AI어플리케이션 스타트업들이 다양한 오픈/클로즈드 LLM 모델들을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모델 가격을 떨어뜨리고 있더라구요.
LLM 라우팅 레이어에서 API콜 자체만 보면 Anthropic 의 비중이 떨어진것도 맞구요(https://openrouter.ai/rankings#leaderboard)
메이저 LLM공급자들의 가격에 종속되기 보다는 자체 엔지니어링을 통해 비용 대비 성능(=AI 아웃풋) 효율화를 이루고 있는 AI스타트업들이 많아지는거 같고, 이런 효율화 능력이 AI 스타트업들의 경쟁력이 되어가는것 같습니다.